쾌락과 고통에 대해 알아보자. 『도파미네이션』- 애나 렘키
『도파미네이션』- 애나 렘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 쾌락과 고통은 저울이다.
이하 내용은 인상깊은 내용들 발췌. 화살표 이후 내용은 내 생각이다.
뇌의 보상 경로에 도파민이 많을수록 경험의 중독성은 더 커진다. 도파민의 발견과 더불어 지난 한 세기 동안 신경과학 분야에서 손꼽히는 획기적인 발견 중 하나는, 뇌가 쾌락과 고통을 같은 곳에서 처리한다는 사실이다. 쉽게 말해 쾌락과 고통은 저울의 서로 맞은편에 놓인 추처럼 작동한다.
중독(Addiction)은 어떤 물질이나 행동(도박, 게임, 섹스)이 자신 혹은 타인에게 해를 끼침에도 그것을 지속적, 강박적으로 소비, 활용하는 것이다. -> 웹소설 읽는 것도 마찬가지. 저자도 중독된 행동이 로맨스소설 탐닉이거든.
헤로인은 모르핀보다 중독성이 2~5배 더 강하다. 펜타닐은 모르핀보다 50~100배 더 강하다.
한 소비 중독자의 황홀경은 구매 품목을 결정하는 데서 시작해 배송을 기대하면서 쭉 이어졌고, 포장 상자를 여는 순간 끝났다. -> 내가 알구몬이나 뽐뿌 같은 사이트 하루에도 몇 번씩 접속하는 게 이런 중독일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 많은 부모는 자식의 감정에 상처를 주는 무언가를 하거나 말하기를 무서워한다. 나중에 아이들이 감정적 고통이나 정신 질환을 겪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 그래서 요새 애들이 버릇없고 싸가지가 없는 듯.
아이들을 부정적인 심리적 경험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노력은 가정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잘 나타난다. 초등학교 단계에서 아이들은 '이주의 스타'상 같은 걸 받는다. 특별히 뭘 잘해서가 아니라 이름순으로 받는다.->ㅋㅋㅋㅋㅋ
하지만 나는(저자는) 우리가 완충재를 가득 채운 독방 같은 곳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유년기를 너무 질병처럼 대하고 과하게 관리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이러면 아이들은 상처받을 일이야 없겠지만 세상에 대처할 방법도 모르게 된다. -> 그러니까 이런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 실제로 문제를 직접 해결해야할 상황에 처했을 때 어찌할 바를 모르고 대처가 안 된다.
팩실, 프로작, 셀렉사 같은 항우울제 사용률은 미국을 선두로 세계 각지에서 높아지고 있다. 미국인 10% 이상이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아이슬란드 10.6%, 호주 8.9%, 캐나다 8.6%, 덴마크 8.5%, 스웨덴 7.9%, 포르투갈 7.8%이다. 25개국 중에 한국의 수치가 가장 낮다(1.3%) -> 한국이 낮은 건 정신과 진료에 대한 기피가 커서 그런거지 우울한 사람이 적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지루함은 발견과 발명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새로운 생각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공간을 만든다. 그게 없으면 우리는 주변 자극에만 끊임없이 반응하게 된다. -> 하루에 10분이라도 핸드폰 떨어뜨려놓고 명상하는 시간 갖기.
도파민은 보상 과정에 관여하는 유일한 신경전달물질은 아니지만, 신경과학자들 대부분은 도파민이 그 중 가장 중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도파인은 '보상 그 자체의 쾌락을 느끼는 과정'보다 '보상을 얻기 위한 동기 부여 과정'에 더 큰 역할을 한다. 그래서 유전자 조작으로 도파민을 만들 수 없게 된 쥐들은 음식을 찾지 못하고 음식이 코앞에 놓여 있어도 굻어 죽지만, 음식을 입안으로 바로 넣어주면 음식을 씹어 먹으며 그걸 즐기는 것처럼 반응한다. -> 동기부여가 잘 안 되는 사람은 도파민 분비가 잘 안 되는 건가?
어떤 약물이 뇌의 보상 경로에서 도파민을 더 많이, 더 빠르게 분비할수록 그 약물의 중독성은 더 크다고 평가된다. 이는 그 약물이 도파민을 함유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 뇌의 보상 경로에서 도파민 분비를 유도한다는 의미다.
상자 속 쥐를 대상으로 할 경우, 초콜릿은 뇌의 기본 도파민 생산량을 55% 늘리고, 섹스는 100%, 니코틴은 150%, 코카인은 225% 늘린다. 암페타민은 1,000%까지 늘린다. 메스암페타민 파이프 한 번이 섹스의 10배다.
우리가 쾌락을 경험할 때, 도파민은 우리의 보상 경로에 분비되고 저울은 쾌락 쪽으로 기울어진다. 우리의 저울이 더 많이, 더 빨리 기울어질수록, 우리는 더 많은 쾌락을 느낀다.
하지만 저울에 관한 중요한 속성이 하나 있다. 저울은 평형을 유지하려고 한다. 그래서 저울이 쾌락 쪽으로 기울어질 때마다, 저울을 다시 수평 상태로 돌리려는 강력한 자기 조정 매커니즘(self-regulating mechanism)이 작동한다. 이러한 자기 조정 매커니즘은 의식적 사고나 별도의 의지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저 반사 작용처럼 균형을 잡으려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쾌락 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이 반작용으로 수평이 되고 나면 거기서 멈추지 않고 쾌락으로 얻은 만큼의 무게가 반대쪽으로 실려 저울이 고통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어떤 쾌락 자극에 동일하게 혹은 비슷하게 반복해서 노출되면 초기의 쾌락 편향은 갈수록 약해지고 짧아진다. 반면 이후 반응, 즉 고통 쪽으로 나타나는 반응은 갈수록 강하고 길어진다. 이 과정을 신경 적응(neuroadaptation)이라 부른다. 다시 말해, 쾌락을 추구할수록 우리의 그렘린은 점점 더 커지고 빨라지고 많아지며, 우리는 이와 동일한 효과를 얻기 위해 앞서 선택한 쾌락을 더 많이 필요로 하게 된다.
쾌락을 느끼기 위해 중독 대상을 더 필요로 하거나 같은 자극에도 쾌락을 덜 경험하게 되는 것을 내성(tolerance)이라고 한다. 내성은 중독의 발생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다.
만성 통증을 없애려고 다량의 오피오이드를 오랫동안 써온 환자일수록 병원을 찾는 빈도가 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다량의 오피오이드에 의존했음에도 그들의 고통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기만 했다. 왜냐고? 그들의 뇌가 오피오이드에 과다 노출되면서 쾌락•고통의 저울을 고통 쪽으로 기울여놨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존의 고통은 더 심해졌고, 고통과 거리가 멀었던 다른 신체 부위에 새로운 고통이 생겼다.
동물 실험을 통해 폭넓게 관찰되고 입증된 이 현상은 오피오이드 유도 통각과민(opioid-induced hyperalgesia)이라고 불린다.
나는 대략 2년간 로맨스 소설을 강박적으로 소비하다가 결국 더 이상 즐길 책을 찾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내 소설 읽기의 쾌락 중추를 불태워버려서 아무 책도 이를 되살릴 수 없게 되버린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쾌락 자체를 좇는 쾌락주의가 그 어떤 쾌락도 느끼지 못하는 쾌락불감증(anhedonia)에 걸린 셈이었다. ->쾌락추구도 적당히 해야 된다.
물론 희망적인 소식은 있다. 우리가 오랫동안 충분히 기다리면, 우리의 뇌는 중독 대상이 없는 상황에 다시 적응하고 항상성의 기준치를 정상 수준으로 되돌린다. 저울이 수평을 이루는 셈이다. 뇌의 저울이 수평을 이루면, 우리는 산책하기, 해돋이 구경하기, 친구들과 식사하기 등 일상의 단순한 보상에서 다시 쾌락을 맛볼 수 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도박으로 인한 도파민 분비는 최종적으로 주어지는 보상(일반적으로 돈) 자체 못지않게 보상 전달의 예측 불가성과 관련있다. 도박을 유도하는 것은 금전적 이득보다는 보상 발생의 예측 불가능성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 ->모바일 게임 가챠에 중독되는 것도 동일한 방식.
도박중독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돈을 따거나 잃을 때 도파민을 어떻게 분비하는지 측정한 연구에서, 두 집단 모두 돈을 땄을 때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지만, 돈을 잃었을 때는 도박중독자가 통제집단에 비해 도파민 수치가 훨씬 낮아졌다. 한편 보상 경로에 분비되는 도파민 양은 이길 확률이 50%일 때 가장 높았는데, 이때가 불확실성이 가장 높을 때다.
도박중독자들은 지면 질수록 도박을 계속하고 싶은 충동은 더 강해지고, 계속 지다가 이기면 쾌감이 더 강해진다고 얘기했다. 이것이 손실 추구(loss chasing)라고 표현되는 현상이다.
소셜미디어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SNS에서는 다른 이들의 반응이 너무 변덕스럽고 예측 불가능하다. 그래서 '좋아요'를 얻기 불확실하다는 점이 '좋아요' 그 자체만큼 우리를 흥분시킨다.
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의하면 코카인 같은 중독성 물질은 뇌를 영원히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알코올부터 오피오이드, 대마초에 이르기까지 다른 중독 물질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인간이라고 다를까? 상담을 하면서 나는 심각한 중독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수년 동안 의존을 멈추고도 단 한 번의 노출로 다시 강박적인 의존에 빠진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아왔다.
물론 희망적인 소식은 있다. 나의 동료인 에디 설리번은 알코올이 뇌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선 세계적인 전문가다. 그는 중독에 따른 뇌의 일부 변화는 돌이킬 수 없지만 손상된 영역을 새로운 신경망을 만듦으로써 우회할 수 있음을 밝혀냈다. 이는 뇌의 일부가 영원히 바뀌더라도, 우리가 새로운 시냅스 경로를 찾아서 건강하게 행동할 수 있음을 뜻한다.
쾌락과 고통은 동시에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매운 음식을 먹을 때 쾌락과 고통을 함께 경험한다. -> 매운 음식에 중독되는 이유!
심하게 다친 병사들 가운데 4분의 3이 부상 직후에 고통을 거의 혹은 아예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다쳤음에도 말이다.
그들의 고통이 "안전한 병원으로 가는 티켓"이었기 때문이다.
과학은 모든 쾌락에는 대가가 따르고, 거기에 따르는 고통은 그 원인이 된 쾌락보다 더 오래 가며 강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신경과학자 노라 볼코프가 진행한 영상 연구로 돌아가 보자. 도파민 전달 수치는 약물을 끊은 지 2주가 지난 상태에서도 보통 수준을 밑돌았다. 그녀의 연구는 2주간의 절제로는 부족하다는 내 임상 경험과 일치한다. 환자들은 보통 2주 동안 계속 금단 증상을 앓는다. 도파민 부족 상태에 있는 셈이다. 반면에 4주는 일반적으로 충분한 시간이다. → 무언가 중독을 끊으려면 최소한 한 달은 시도해 보자!
간혹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마초를 니코틴으로, 비디오 게임을 외설물로 바꿔도 되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이는 효과적인 장기 전략이 아니다. 그렘린들을 이겨내고 저울을 쾌락 쪽으로 기울일 만큼 강력한 보상이라면 그 자체로 중독성이 있어서 하나의 중독에서 다른 중독으로 바뀌는 결과(교차 중독)를 야기할 수 있다. 반면에 평균 이하 강도의 보상은 보상처럼 느껴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고도의 도파민 보상을 받으면 평범한 쾌락으로부터 기뻐하는 능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중독의학 분야에서 계속되고 잇는 논란은, 중독 대상에 심하게 기대왔던 사람들이 그 대상에 '적당히, 위험 없이 기대는 일이 가능한가'하는 것이다. AA에 수십년간 축적된 지식에 따르면, 중독자들에게 선택지란 절제뿐이다.
하지만 최근 증거에 따르면 과거에 중독 기준에 살짝 걸쳐 있던 일부 사람들, 절제된 방법으로 자신의 중독 대상에 다시 기댈 수 있다. 내 임상 경험에서도 이것은 참이다.
우리가 강박적 과용을 완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신과 중독 대상 사이에 장벽을 만드는 방법이 자기 구속(self-binding)이다. -> 마치 내가 과자를 끊기 위해서 뜯지도 않은 과자봉지들을 버린 것처럼.
의지는 인간의 무한 자원이 아니다. 의지는 근육 운동에 더 가까워서 쓰면 쓸수록 더 피로해진다. -> 모든 걸 의지로 해결하려고 하면 쉽게 실패하는 이유! 꼭 필요한 곳에서만 잠깐 잠깐 쓸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물리적 구속 형태는 몸에 해부학적인 변화를 주는 방식이다. 위 밴드 삽입술, 위 절제술, 위 우회술 같은 체중 감량 수술이 대표적인 예다.
위 밴드 삽입술은 위나 소장의 일부를 들어내지 않는 대신 위 주위에 고리를 둘러서 위의 크기를 줄인다. 위 절제술은 위의 일부를 수술로 제거해 그 크기를 줄인다. 위 우회술은 위장, 십이지장과 연결되어 영양소를 흡수하는 소장의 경로를 바꾼다.
뚱뚱한 사람들은 대부분 음식에 중독될 잠재적 위험성을 갖고 있는데, 이 부분은 수술만으로는 충분히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수술을 받은 후 식습관 변화에 필요한 행동적, 심리적 조치를 받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래서 대다수가 건강하지 못한 방법(과식 등)으로 다시 먹기 시작해 작아진 위를 억지로 늘린다. 일부는 합병증에 시달리거나 재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기도 한다. 먹는 양을 어찌해서 줄인다고 해도 상당수 사람이 알코올 같은 다른 탐닉 대상으로 갈아탄다.
게다가 이런 수술은 흡수율을 높여서 알코올에 대한 대사 작용 방식을 바꾼다. 일반적인 크기의 위가 없다는 건, 알코올이 혈류에 거의 동시에 흡수된다는 뜻이다. 결국 술을 조금만 마셔도 더 빨리 취하고 더 오래 취해 있게 되는데, 이는 알코올 링거를 맞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신경과학자 S.H.아메드와 조지 쿱의 연구에 따르면, 코카인에 하루에 6시간씩 무제한 접근이 허용된 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레버를 점점 더 많이 누르다가 결국 지치거나 죽음에 이른다. 관대한 접근 조건(6시간) 하에 자가 투여가 늘어나는 현상은 메스암페타민, 니코틴, 헤로인, 알코올에서도 확인되었다.
하지만 하루에 한 시간씩만 코카인에 접근한 쥐들은 수일간 계속해서 일정량의 코카인에만 기댄다. 다시 말해 매일 단위 시간당 마약을 더 달라고 레버를 누르지 않는다.
이 연구는 중독 대상에 대한 접근을 제한해 시간적 기회를 줄이면 사용량을 줄이는 동시에 무한 접근으로 귀결되는 소비의 강박과 증가를 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고도의 도파민 제품은 '만족을 미루는 능력'을 해치는데 이를 지연 가치 폄하(delay discounting)라고 한다. 지연 가치 폄하는 보상을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보상 가치를 낮게 보는 심리 현상을 가리킨다.
오피오이드에 중독된 연구 참가자들은 미래를 평균 9일로 나타냈고, 건강한 대조군은 미래를 평균 4.7년으로 나타냈다. 이 현저한 차이는 우리가 중독성 있는 물질에 지배를 받고 있을 때 '시간적 시야'가 얼마나 좁아지는지를 보여준다.
요즘은 사방에서 도파민이 넘쳐난다. 그래서 우리는 즉각적인 만족에 길들어져 있다. 우리가 뭔가를 사고 싶으면, 그다음 날 문간에 그게 떡 하니 놓여 있다. 우리가 뭔가를 알고 싶으면, 곧바로 화면에 답이 나타난다. 결국 우리는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해서 알아내거나, 답을 찾는 동안 좌절하거나, 자신이 바라는 걸 기다려야 하는 습관을 잃고 있다.
참가자들이 즉시 보상을 선택했을 때는 뇌에서 감정 처리와 보상 처리를 하는 부위가 활성화되었고, 보상을 미뤘을 때는 계획과 추상적 사고와 관련된 뇌 부위인 전두엽 피질이 활성화됐다.
이 연구가 암시하는 바는, 현대에는 감정적 보상 경로가 삶에 지배적인 동력이 되면서 우리 모두가 전두엽 피질 위축증을 앓을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마리화나 한 개비조차 이성과 합리를 마비시킬 수 있다. 약에 취하면 장기적인 보상과 흡연이 주는 즉각적인 보상을 더 이상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못한다.
그런데 마시멜로를 쓰다듬는 행동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아이는 정말 원하는 대상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대신에 그것을 너무나도 소중해서 먹을 수 없거나 적어도 충동적으로 먹을 수 없는 반려동물처럼 취급했다.
재스민은 매일 맥주를 10병까지 마시다가 결국 나를 찾아왔다. 나는 자기 구속 전략으로서 집에 잇는 모든 술을 없애라고 말했다. 그녀는 내 권고를 거의 따랐지만, 여기엔 반전이 있었다.
그녀는 맥주 한 병만 빼고 나머지 술을 모두 버렸는데, 그 맥주는 냉장고에 말 그대로 모셔두었다. 그리고 그것을 "토템 맥주"라고 불렀다. 자신의 의지와 자율성에 대한 표현이자 금주 선택에 대한 상징으로 삼은 것이다.
그녀는 이 세상에서 구할 수 잇는 어마어마한 양의 맥주 중 일부를 마시지 않는다는 부담스러운 임무보다 그 한 병의 맥주를 마시지 않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유혹의 대상을 통제의 상징으로 바꾸는 이러한 초인지적인 기술이 재스민을 절제로 인도한 셈이다. ->이 방법은 진짜 신박하다. 나도 써먹어봐야겠다.
오해는 없길 바란다. 약물 치료는 구명 도구가 될 수 있고, 나 또한 약물을 환자 치료에 활용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하지만 인간의 온갖 고통을 약물로 없애려면 댓가를 치러야 한다.
앞으로 함께 보겠지만 더 효과적인 대안이 있다. 바로 고통 받아들이기다.
"찬물 샤워 후에는 기분이 더 좋아진다는 걸 알게 됐죠. 그래서 온라인에서 찬물 요법을 검색했고, 얼음 목욕을 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찾아냈습니다. 좀 미친 것 같았지만 저는 간절했어요. 그 사람들의 안내에 따라 욕조에 찬물을 채우고 그 안에 몸을 담그는 수준까지 갔죠. 그랬더니 훨씬 더 좋아서 강도를 높였어요. 욕조 물에 얼음을 더해서 온도를 훨씬 더 낮췄죠. 그렇게 하니까 온도가 10도까지 내려갔어요. 아침마다 얼음물에 5분에서 10분 정도 들어가 있다 나오고, 자기 전에 그걸 또 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3년 동안 매일 그렇게 했죠. 제가 (약에서) 회복한 비결이었어요."
"처음 5초에서 10초 동안엔 온몸이 비명을 지르죠. '그만해, 이건 자살 행위야.' 그 정도로 고통스러워요."
"그래도 시간이 정해져 있는 거라고 속으로 생각해요. 그만한 가치가 있죠. 처음 그렇게 충격을 받고 나면 피부가 무감각해져요. 그러고 있다가 나온 직후엔 기분이 정말 끝내줘요. 약을 했을 때와 똑같아요. 엑스터시나 재미로 비코딘을 했을 때의 느낌처럼 말이죠. 몇 시간 동안 기분이 참 좋아요."
"찬물이 주는 고통이 초반에 클수록 이후에 느끼는 황홀감도 더 커진다는 걸 시간이 가면서 깨달았어요." -> 내가 이걸 읽고 찬물 샤워를 시도하고 있는데 수도꼭지를 가운데에서 우측으로 5~10도 정도만 돌려도 견디가가 어렵다(지금 3월에). 샤워 전에 운동으로 몸의 온도를 높인 상태에서 하면 할만하지만 그냥 보통 상태로 들어가면 어렵다. 그래서 역으로 운동을 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 찬물 샤워 후에 기분이 끝내주게 좋아지지는 않는다(아직 온도가 충분히 낮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속옷 한 장, 양말 한 켤레 신을 때 그 따스함에 기분이 좋아지기는 한다.
프라하의 카렐대학교 과학자들은 10명의 남자 지원자가 (얼굴은 밖에 내놓고) 한 시간 동안 찬물 속에 잠겨 있는 실험을 진행해 "유럽 응용 생리학 저널"에 게재했다. 실험에 사용된 물의 온도는 섭씨 14도였다. 연구자들들이 혈액 샘플을 살펴본 결과, 찬물 입욕은 혈장의 도파민 농도를 250%, 혈장의 노르에피네르핀 농도를 530% 증가시켰다.
도파민은 찬물 목욕 중에 꾸준히 증가했고, 목욕을 끝낸 후에도 한 시간 동안 증가 상태를 유지했다. 노르에피네르핀은 처음 30분 동안 가파르게 증가한 다음 나머지 30분 동안 정체상태를 유지했는데, 목욕이 끝난 한 시간 동안 약 3분의 1로 줄었지만 두 시간이 지나서도 기준치를 넘어선 상태를 유지했다. 도파민과 노르에피네르핀의 수치는 고통 자극 자체를 잊어버릴 만큼 잘 유지되었다. 이는 마이클이 "나온 직후엔... 몇 시간 동안 기분이 참 좋아요"라고 한 발언을 뒷받침한다.
극한 추위는 신경전달물질의 범위를 넘어서 뉴런의 성장까지 촉진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뉴런이 제한된 상황에만 반응해 미세조직을 바꾼다고 알려진 만큼, 이는 정말 주목할만한 발견이다.
고통 자극이 반복적으로 주어지자, 개의 기분과 심박수는 거기에 맞춰 적응했다. 초기 반응(고통)은 더 짧고 약해졌다. 사후 반응(쾌락)은 더 길고 강해졌다.
호르메시스는 추위, 열기, 중력 변화, 방사선, 음식 제한, 운동 등 해롭거나 고통스러운 자극이 조금 혹은 적당하게 주어졌을 때의 긍정적인 효과를 연구하는 과학의 한 분야다.
1945년 일본 핵 투하 당시, 피해 지역 바깥에서 지내던 일본인 중 방사선에 소량 피폭된 이들은 방사선 피폭이 없었던 이들에 비해 수명이 아주 조금 더 길고 암 발병률도 더 낮았다. 반면 폭발 바로 인근에서 있었던 이들 가운데 약 20만명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호르메시스 과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DNA 손상 복구를 위한 저선량 자극, 유도 아포토시스(세포 자연사)를 통한 이상 세포 제거, 유도 항암 먼역을 통한 암세포 제거 등"은 방사선 호르메시스의 유익한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이건 좀 믿기 어려운데? 소량 피폭된 사람과 피폭 없는 사람의 개개인 특징이 다 다를텐데 이게 비교가 가능한가?
설치류와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간헐적 단식과 칼로리 제한은 혈압을 줄이고 심박 변이를 높였을 뿐 아니라 수명을 늘리고 노화와 질병에 대한 저항력까지 높인 것을 관찰됐다. -> 간헐적 단식이 고통 및 도파민과 이렇게 또 연결되네!
운동은 어떨까?
운동은 세포에 유독한 영향을 미쳐서 체온 상승, 유해 산화제 생성, 산소 및 포도당 부족을 일으킨다. 하지만 운동이 건강을 좋게 만든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운동 부족이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증거는 반박할 수 없다.
운동은 도파민,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에피네프린, 엔도카나비노이드, 내인성 오피오이드 펩티드(엔돌핀) 등 긍정적인 기분 조절과 관련된 다수의 신경전달 물질을 증가시킨다. 또한 새로운 뉴런을 만들고 신경아교세포를 유지하는 역할도 한다. 더 나아가 약물에 중독될 가능성을 낮추기까지 한다.
우리가 공급량이 제한적인 식량을 두고 경쟁하기 위해 매일 10km를 횡단하도록 진화했음을 고려하면, 현재 우리의 좌식 생활 습관의 역효과는 굉장히 충격적이다.
내가 내 환자들에게 늘 얘기하지만, 하루에 30분 동네를 걷는 것만으로도 차이를 만들 수 있다. 여기에는 의학적으로 반론의 여지가 없다. 즉, 운동은 내가 처방할 수 있는 그 어떤 알약보다 기분, 불안, 인지, 활기, 수면에 더 깊고 일관성있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다. -> 하지만 당신이 보통의 건강한 사람이라면 걷기만으로는 운동 효과가 없을 것 같다. 최소한 숨이 찰 정도로는 뛰어야 한다. 일반인이 걷기만 하는 건 운동보다는 노동이다. 걷기만 하려면 차라리 햇빛 좋고 날씨 좋은 때에 밖에서 걷자. 적어도 기분이라도 좋아지니까.
하지만 고통 추구는 쾌락 추구보다 어렵다.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좇는 것은 인간의 천성이다. 우리는 고통 후에 쾌락이 온다는 것을 배워도 이를 아주 쉽게 잊는다. 나는 억지로 침대에서 빠져나와 운동하러 가는 아침마다 고통의 교훈을 되새기려한다(고통 끝에 쾌락이 온다!). 하지만 이것은 매일의 도전이지 결코 기쁨은 못된다.
(사회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수줍음 많고, 낯선 이들과의 접촉을 두려워하는 사람 치료하기)
노출 치료는 환자를 군중 속에 있기, 다리를 가로질러 운전하기, 비행기 타고 가기 등 여러 불편한 상황 속에 의도적으로 노출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불편한 감정이 생기고, 그럼으로써 그 행위를 견디는 능력이 향상된다. 이를 통해 환자들은 그런 상황을 즐기게 될 수도 있다.
"나를 해하지 않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남긴 이 유명한 경구는 심리 치료에서도 참이다. 데이비드의 가장 큰 두려움은 낯선 이들과의 대화였다. 그래서 직장 동료들과 담소 나누기가 그에게 주어진 첫 번째 임무였다.
"저의 치료과제는 회사의 탕비실, 휴게실, 아니면 구내식당에 가서 아무나 붙잡고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대본이 있었죠. '안녕하세요, 저는 데이비드라고 합니다. 소프트웨어 개발 쪽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일을 하나요?' 점심 전, 점심시간, 점심 후로 일정을 짰습니다. 그리고 대화 전, 대화 중, 대화 후에 받는 고통을 측정해야 했어요. 1부터 100까지 점수가 있는데, 100이 제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고통 수준을 가리켰고요."
숫자로 자기 인식을 하는 방법은 컴퓨터, 엔지니어링 쪽 사람들에게 특히 잘 맞는 듯하다.
"대화하기 전에 기분은 어땠어요? 음, 숫자가 몇이었죠?"
"대화 전에는 100이었죠. 정말 두려웠어요. 얼굴은 시뻘게지고, 땀도 났죠."
"어떤 일이 생길까 봐 두려웠나요?"
"사람들이 저를 보고 비웃을까봐 두려웠어요. 아니면 제가 이상해 보인다고 HR팀이나 경비한테 얘기할까봐 두려웠죠."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일어날까봐 두려워했던 일들은 전혀 안 일어났어요. HR팀이나 경비한테 연락하는 사람도 없었죠. 저는 불안감을 떨쳐내면서, 그리고 상대방의 시간을 존중하면서 그 순간에 최대한 오래 머물렀어요. 대화는 아마 4분 정도 이어졌을 거에요."
"대화 후에는 숫자가 어떻게 됐죠?"
"40 정도였어요. 불안감이 확 줄었죠. 몇 주 동안 하루에 세 번씩 스케줄에 맞춰서 그렇게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쉬워졌어요. 그리고 나서 회사 밖의 사람들한테도 도전해봤죠."
"스타벅스에서 바리스타랑 일부러 이야기를 나눴어요. 전에는 그랬던 적이 전혀 없었거든요. 대화 자체를 피하려고 늘 앱으로 주문했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바로 카운터로 가서 커피를 주문했죠. 뭔가 바보 같은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할까 봐 정말 두려웠어요. 카운터 위에 커피를 조금 흘리기 전까지는 괜찮았어요. 이 얘기를 저의 치료사한테 했더니 그 사람이 저한테 이번에는 일부러 커피를 흘려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다음에 스타벅스에 갔을 땐 일부러 커피를 흘렸죠. 불안했지만 적응이 됐어요."
"지금 왜 웃는 거죠?"
"지금 저의 인생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르실 거에요. 경계심도 줄었고요. 사람들과 대화하는 일을 피하려고 미리 열심히 계획을 짤 필요도 없게 됐어요. 사람으로 가득 찬 열차를 피하려고 다음 열차, 그 다음 열차를 기다렸다가 지각하는 일도 없어졌어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정말 즐거워요." -> 내가 이렇게 긴 이야기를 굳이 옮겨 쓴 건 나한테도 적용해보고 싶어서다! (나도 어릴 때는 사람 대하는 게 참 어려웠는데 다행히 나이를 먹으면서 많이 좋아졌다.) 요새 젊은 세대는 통화가 두려워서 문자를 선호한다는 데 그런 사람들에게도 이 일화가 도움이 될 것이다. 중요한 건 첫발을 내디뎌서 시도하는 것.
우리의 뇌는 쾌락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내성을 갖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통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뇌는 고통 쪽에 내성을 갖게 된다. 스카이다이버들을 대조군(뱃사공들)과 비교한 연구에 따르면, 스카이다이빙을 반복적으로 즐긴 이들이 기쁨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무쾌감증을 경험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거짓말은 희소한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경우에는 분명 뛰어난 전략일 수 있다. 하지만 풍족한 세상에서 거짓말은 고립, 갈구, 병적인 과소비 등의 위험을 낳는다.
근본적인 솔직함은 첫째, 우리의 행동을 확실하게 의식하도록 한다. 둘째, 친밀한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셋째, 진실한 삶을 이끌어 현재의 자신뿐 아니라 미래의 자신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는다. 더 나아가 사실대로 말하기는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중독을 막을 수 있다.
로맨스 소설 읽기를 멈추기로 마음먹었다. 가장 먼저 전자책단말기를 없앴다. 그러고는 2주 동안 불안과 불면을 비롯한 금단 증상을 겪었다. 내가 보통 책을 읽는 시간인 취침 전 밤 시간에 특히 그랬다. 알아서 잠다는 방법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달 말이 되니 기분이 괜찮아졌고, 상대적으로 적당량의 독서를 계획하면서 적절한 로맨스 소설을 읽어 보았다. 그러자 예전의 나쁜 습관이 힘을 발휘해 이틀 연속으로 밤늦도록 성애물에 탐닉했다. 하지만 이제는 나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강박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패턴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 행동을 완전히 멈춰야겠따는 결의가 점차 커졌고 마침내 행동으로 옮겼다. 나의 백일몽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 나도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데 새벽까지 판타지소설 읽으면서 쾌락추구 행동을 한 적이 있어서 공감이 간다.
있는 그대로 말하기는 주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자신의 약점을 서슴없이 드러낼 때 특히 그렇다. 이는 반직관적이다. 우리는 자신의 바람직하지 못한 면을 드러내면 사람들이 떠나갈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내 성격적 결함이나 일탈 행위를 알면 거리를 둔다는 게 논리적으로는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다. 솔직할수록 사람들은 더 가까이 다가온다. 당신의 엉망인 모습을 통해 자신의 약점과 됨됨이를 돌아보고 의심, 두려움, 나약함이 자신만의 약점이 아님을 알게 되면 안심하고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그러나 도파민 증가를 유발하는 솔직한 고백은 때로 악용되기도 한다. 주의가 필요하다.
2018년 중독을 주제로 한 의학 컨퍼런스에서 나는 중독으로부터 긴 회복기를 가졌다고 자신을 소개한 한 남성 옆에 앉았다. 그는 자신의 회복 과정을 청중들에게 이야기하러 그곳에 나와 있었다. 무대로 올라가기 직전에 그는 나를 보고 "울 준비하세요"라고 얘기했다. 나는 그 말에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자기 이야기에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기대한다는 사실에 당황스러웠다.
자신이 주로 피해자이며 나쁜 결과는 남탓이라고 하는 환자들은 보통 상태가 더 나빠지거나 계속 그 상태로 남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사람들은 남을 비난하기 바빠서 자신의 회복에는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자신의 책임을 정확히 표현하는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하면 호전되고 있다는 의미다.
임상 업무를 하다 보면 가족 구성원 한 사람이 중독에서 회복하면, 이내 다른 구성원도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남편이 술을 끊으니까 부인이 외도를 멈춘 경우, 부모가 대마를 그만 피우니까 자녀도 똑같이 그만하는 경우도 있었다. -> 내 배우자가 꾸준히 운동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배우자에게 잔소리를 할 것이 아니라 내가 꾸준히 운동을 하면 된다!
심리적 여유는 물질세계 너머의 원천에서 비롯된다. 우리 바깥의 무언가를 믿거나 그것을 위해 매진하는 자세, 그리고 인간적인 유대감과 의미로 가득한 삶을 만드려는 노력은 비록 가난에 처해 있더라도 우리에게 여유있는 마음가짐을 갖게 한다. ->하지만 최소한의 물질적 여유는 필요함.
나는 환자들과 만나면서 솔직함이 의식을 고양하고, 더 만족스러운 관계를 만들며, 더 진심 어린 이야기에 힘쓰도록 하고, 만족 지연 능력을 강화한다는 점을 알게 됐다. 또한 솔직함은 미래에 중독이 커지는 상황을 막아 준다.
그러나 솔직하기란 매일의 도전이다. 내겐 이야기를 살짝 꾸며서 나를 돋보이게 하거나 나의 나쁜 행동을 변명하고 싶은 마음이 늘 있다. 그런 충동을 이겨내려고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서 솔직함은 쓸데없는 일에 머리를 덜 써도 된다는 점에서 좋다.
사회적 처벌의 한 형태인 소외에 대한 두려움은 특히 강력하다. 버려지고 따돌림당하며 앞으로 무리에 끼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내면의 솔직함을 마비시키기 충분하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종교 단체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약물과 알코올 오용 확률이 낮다. 하지만 신앙에 기반한 단체가 죄인을 외면함으로써 그리고 비밀과 거짓말을 숨기라고 당부함으로써 수치심 문제에서 그릇된 쪽으로 가둬버리면 그 사람을 수치심의 파괴적 사이클로 밀어 넣는 꼴이 된다.
파괴적 수치심▼
친사회적 수치심▼
행동경제학자 로런스 야너코니는 신앙에 기반한 단체의 집단선과 관련하여 이렇게 썼다. "내가 주일 예배에서 얻는 즐거움은 내가 투입한 에너지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에너지에 따라서도 좌우된다.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그들이 나를 얼마나 따뜻하게 맞이하는지, 그들이 노래를 얼마나 잘하는지, 그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봉독하고 찬양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집단선은 집단 활동과 모임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 집단 규칙 및 규범의 준수를 통해 강화된다. -> 종교 단체가 커질수록 중독성이 강해지는 이유
일반적으로 종교 단체나 사회적 집단이 여러모로 관대하고 규칙과 제한이 적을수록 더 많은 추종자를 끌어들일 것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더 엄격한 교회들'이 무임 승차자를 걸러내고 더 탄탄한 집단선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분방한 단체들보다 더 많은 추종자를 거느릴 뿐 아니라 성공적으로 안착할 확률도 더 높다. ->이상한 종교단체에 사람들이 빠지는 이유
때로 부모로서 내 실수나 미숙한 면을 감추고 최고의 모습만 보여야 자녀에게 올바른 것을 가르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는 아이들이 자신이 사랑받으려면 완벽해야 한다고 느끼게 만들 수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마음을 열고 자신이 고민하고 노력하는 바를 솔직하게 표현하면, 아이도 스스로 마음을 열고 솔직하게 행동한다. -> 한국에서 이런 식으로 육아 가능한 부모는 10%도 안 될 듯.
아이들은 나를 용서했고, 지금까지도 내가 자기들의 초콜릿을 어떻게 "뺏어" 먹고 "거짓말했는지" 말하기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놀리면 난 괴로우면서도 그걸 반긴다. 우리 집에서는 누구나 실수를 해도 영원히 비난받거나 버림받지는 않을 것임을 우리는 가족으로서 함께 확인했다. <- 이게 가능한 부모는 정말 극소수라니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렇게 노력할 가치가 있다.
나는 딸이 이미 알고 있는 부분을 사실로 인정함으로써 딸의 정확한 자기 평가 능력을 격려했다. 또한 우리가 모든 방면에 뛰어날 수 없고,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아는 일이 중요하며, 그래야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딸은 1년 후에 피아노 수업을 관뒀지만 지금도 음악을 즐긴다. 라디오를 따라서 음정은 전혀 안 맞게 노래하지만 조금도 쑥스러워하지 않는다. <-자식한테 우쭈쭈하지말고 객관적으로 본인 능력을 알 수 있게 피드백해줄 것.
우리는 지금 당장 기댈 수 있는 기분 좋은 도피라면 무엇에든 마음이 간다.
트렌디한 칵테일, 소셜미디어, 리얼리티 쇼 몰아보기, 밤에 인터넷으로 포르노 보기, 포테이토칩과 패스트푸드, 몰입형 비디오 게임, 이류 뱀파이어 소설 등 목록은 끝이 없다. 중독성 있는 대상과 행동은 우리에게 잠시 휴식이 되지만 길게 보면 우리의 문제를 키운다.
그런데 세상으로부터 도피해 망각의 길을 찾는 대신 세상쪽으로 방향을 틀면 어떨까? 세상에서 도망가는 대신 세상에 몰입하면 어떨까?
균형을 찾아 유지함으로써 얻어지는 보상은 즉각적이지도 않고 영원하지도 않다. 보상을 얻으려면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앞에 무엇이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기꺼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당장 영양가 없어 보이는 지금의 행동들이 실제로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축적되고, 이것이 미래의 언젠가 나타날 거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회복은 '해리포터'에서 덤블도어가 가로등 기둥을 밝히면서 어두운 골목을 걸어 내려갈 때의 장면과 비슷해요. 그가 골목 끝에서 발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봐야 골목 전체에 불이 들어온 광경이 보이죠. 그가 지나온 길의 빛을요."
저울의 교훈
1. 끊임없는 쾌락 추구(그리고 고통 회피)는 고통을 낳는다.
2. 회복은 절제로부터 시작된다
3. 절제는 뇌의 보상 경로를 다시 제자리에 맞추고, 이를 통해 더 단순한 쾌락에도 기뻐할 수 있도록 한다.
4. 자기 구속은 욕구와 소비 사이에 말 그대로 초인지적 공간을 만드는데, 이 공간은 도파민으로 과부하를 이룬 지금 세상에 꼭 필요한 것이다.
5. 약물 치료는 항상성을 회복시킬 수 있다. 하지만 약물 치료로 고통을 해소함으로써 잃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6. 고통 쪽을 자극하면 우리의 평형 상태는 쾌락 쪽으로 다시 맞춰진다.
7. 그러나 고통에 중독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8. 근본적인 솔직함은 의식을 고취하고, 친밀감을 높이며, 마음가짐을 여유있게 만든다.
9. 친사회적 수치심은 우리가 인간의 무리에 속해 있음을 확인시킨다.
10.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세상에 몰입함으로써 탈출구를 찾을 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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