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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 제목은 ‘KNOWING-DOING GAP’. 옮긴이는 ‘지행격차’라는 멋진 단어로 번역했다. 조직생활에서의 지행격차에 대한 내용이지만 개인생활에 적용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그런데 경영관련 지식이 없고 용어에 생소한 사람은 초반에 책 읽기가 좀 버겁다.(나 같은 사람—;) 또박또박 읽어야지 내용이 이해가 된다.(사실 번역의 문제도 한몫하는 것 같다. 원서를 못봐서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번역본은 문장들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느낌을 자꾸 받았다). 재미없지는 않다.
아래는 읽으면서 내가 인상깊었던 부분들을 발췌한 것이다. 전체내용이 아니니 이것만 읽고 책의 내용을 혹시라도 곡해하지 말자. 만약 마음에 와 닿는 게 있으면 꼭 책을 전부 읽어보시기 바란다. 굵은 글씨가 책의 내용이고 뒤는 내 생각.
기업들은 경쟁사 관행의 유형적이고 구체적이며 프로그램화된 측면들을 지나치게 중시한다. 반면, 경쟁사가 무엇을, 왜 하는지에 대한 길잡이가 되는 기저에 깔린 철학은 경시하는데, 이것이 지행격차(KNOWING-DOING GAP)를 일으키는 원인들 중 하나이다.
말이 행동을 대신할 때:
· 의사결정이 행동을 대신할 때: 어떤 사안에 대해 광범위하게 이야기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모두 공공연히 합의를 보았으며, 구체적 관행들의 장단점까지 토론을 했기 때문에, 문제가 이미 해결되었다는 믿음. 결정은 그 자체로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않는다는 조직의 중요한 공리를 망각한 것.
의사결정자와 실행하는 사람이 다른 한국기업의 경우에 더 많은 것 같다. 게다가 이것도 안 될 때가 있는데, 회의를 했는데 합의에도 이르지 못할때. ‘이 문제에 대해선 다음에 다시 얘기하죠’라는 도대체 무엇때문에 회의를 했는지 심각하게 회의감 들게 하는 멘트.
· 프레젠테이션이 행동을 대신할 때: 규모가 클수록 심각. 상당한 시간을 멋들어진 프레젠테이션에 쏟아붓지만 ‘현장’에서 업무 프로세스에 대해 직접적으로 배우고 개선하려고 애쓰는 시간은 거의 없음. 임원급 및 경영자에서 더욱 그러함.
갑을관계에선 불가피한 면이 있는 것 같다. 갑이 화려하고 예쁜 프레젠테이션을 좋아하는데 계약을 따내기 위해서 안 꾸밀 수 있을까? 다만 조직내부용 프레젠테이션이라면 맞는 말. 관리자급 인원이 프레젠테이션 자료만 만지작거리고 있으면 그 프로젝트에서 ‘실제로’ 일하는 인원은 신뢰 & 동지애를 느끼기 힘들다.
· 문서작성이 행동을 대신할 때: 회의하기, 대화하기, 리포트 만들기가 무언가 성취하는 행동이라 착각.
많이 느낀다. 실제로 (내가 일했던 곳에서도)현대캐피탈, 농협 사태 이후 윗분들의 몇마디 말씀에 문서작성이 행동을 대신했다(+면피용 문서작성하기). 회의도 늘어났다. 퇴근시간이 되면 하루종일 바삐 열심히 일하긴 했는데 막상 결과물이 없다.
· 사명선언이 행동을 대신할 때: 사명선언문을 어딘가에 적어두는 것과 실행하는 것을 혼동하지 마라. 철학이나 핵심가치를 정하고 전시한다고 해서 사람들의 행동이 바뀔 거라고 기대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예로 ‘팀워크’를 강조할 거면 ‘팀 기반 보상(team-based compensation)’을 철저히 실행하라. 적어놓으면 이대로 행해줄 거라는 착각에 가장 빠지기 쉬운 사람이 CEO.
이건 뭐 실제로 엔론의 사례만 보더라도 답 나온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기업으로 꼽히는 엔론의 가치선언문 4가지가 ‘도덕성, 커뮤니케이션, 존중, 뛰어난 성과’였다. 사명선언을 하는 것은 물론 좋다. 다만 그 선언이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일수록 말단사원이 느끼기에는 더 와닿는다. 그리고 여러가지가 아닌 오직 하나일 때 더 실천한다. CEO가 하달만 하는 것이 아닌 직접 전사원 앞에서 진솔함을 전하는 것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 기획이 행동을 대신할 때: 기획은 조직성과와 본질적으로 무관. ‘계획수립’은 사명선언 문제와 연관됨.
개인적으로 치환해보면 왜 문제인지 알 수 있는 것 같다. 기획이란 개인으로 보면 앞으로 ‘할 일 짜기’인데 이게 GTD방법론이나 프랭클린 플래너 식으로 잘 수립해두면 기분 좋다. 일간/주간/월간 할일 만들고 몇주 뒤, 몇달 뒤에는 이러저러한 성과가 나올 것이고… 란 생각으로 계획짤 때는 만족감을 얻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생사 계획대로 되던가? 나도 GTD방법론 많이 쓰지만 솔직히 제대로 지키기 매우 어렵다. 초중딩 방학시작할 때 ‘일기는 매일 써야지’하지만 실제로는 개학전에 몰아서 대충 쓰는 것이 기획과 행동이 불일치한다는 좋은 예.
· 왜 말 잘하는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을까? 타인에 대한 인상을 형성할 때 말과 행동이 단초가 되는데 말은 즉각적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유일한 데이터인 반면에 행동(성과)은 데이터를 얻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대부분 조직의 성과는 여러사람의 상호의존적 결과이기 때문에 측정자체도 어렵기 때문.
· 부정적인 사람이 똑똑해 보인다. 똑똑하게 보이는 최상의 방법 중 하나가 남의 아이디어를 비판하는 것. 못난 기업일수록 고위경영진이 회의석상에 있을 때 하위간부가 동료의 아이디어를 비판하여 자신의 위상을 높이려 한다. 아이디어에 대해 ‘안돼’라고 말할 이유를 찾는 것은 언제나 가능하다.
조직이 아닌 개인의 일로 예를 들어 보면 대부분의 여자들이 입으로는 다이어트에 대한 전문가지만 실제로는 성공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을 보면 바로 이해가 된다. 심지어 그네들은 성공적으로 다이어트 수행중인 사람이 옆에 있어도 거기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내놓는다. 남은 실행하는데 본인은 못 하는 것에 대한 변명으로.
기억이 생각을 대신할 때:
· 과거에 내린 결정들과 일관성을 유지하고, 실수 인정을 회피하며, 끈기를 보일 것에 대한 압력이 존재한다.
· 사람들이 인지적 폐쇄와 모호함 회피에 대한 강한 필요를 가지고 있다.
· 과거에 기초한 가능/불가능에 대한 기대를 미래까지 끌고 간다.
개인도 솔로탈출을 하려면 솔로일 때의 자유를 어느정도 포기할 각오를 하고 실제로 포기해야지만이 커플의 달콤함을 누릴 수 있다. 하물며 기업이 혁신을 실천하려면 얼마나 큰 변화가 필요할까. 잘나갈때야 관행대로 해도 굴러가겠지만, 못나갈때는 과거와 결별없이 어떻게 잘 나갈 수 있겠느냐는 말인 듯 하다. 스티브 잡스 형님이 애플 복귀이후 보여주신 결과가 아주 좋은 예가 아닐까 싶다. 반면에 예전 MB가카의 툭하면 나오는 대사인 ‘내가 예전에 XX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씀이 씁쓸하게 떠오른다.
두려움이 지식 실행을 가로막을 때:
· 두려움은 지행격차를 넓히는 데 일조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자신의 아는 바에 따라 행동하려면 그 행동으로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해고당할까 봐, 미래가 어두워질까 봐, 자존감에 상처를 입을까 봐 두려워하게 되면 더 좋은 일처리 방식을 알 때조차 과거를 반복하곤 한다.
개인적으로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꼭 읽어봤으면 하는 부분이다. 한마디로 ‘호통경영/공포경영’ 하지 말라는 말인거 같다. 하긴 연산군처럼 경영했다간 결국 어떤 꼴이 나는지 우리나라 역사도 증명하지 않는가. 부하직원들이 직언을 서슴게 되면 그 조직은 볼 것도 없다. 그런데 이 사실을 윗사람만 모른다. 그런데 이건희 보면 호통경영으로 유명한데 삼성은 잘 나는 거 보면 좀 더 고찰이 필요하다.
조직에서 '두려움'과 '몸사림'을 몰아내는 법:
· 상사에게 나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을 칭찬하고, 금전적으로 보상하고, 승진시켜라.
· 행동하지 않는 것을 유일한 실패로 간주하라. 실패한 행동이 아닌 복지부동을 벌하라.
· 리더들에게 자신의 실패에 대해 말하도록 권장하라. 특히 실패로부터 무엇을 배웠는지에 대해 말하도록 권하라.
· 열린 소통을 권장하라.
· 사람들에게 두 번째(그리고 세 번째) 기회를 주어라.
· 타인을 창피주는 사람들(특별히 리더들)을 추방하라.
· 실수(특히 새로운 시도를 하다 저지른 실수)로부터 배우고, 심지어 기뻐하라.
· 새로운 것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벌하지 말라.
사원의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한 부분이다. 내가 경영자의 입장이 되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게 어려울 거 같다고 머릿속으로 상상은 해도 실제로 얼마나 어려울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대학생활, 군대생활, 짧은 사회생활 중에서 이런 분을 아직까지 한명도 못 봤던 점은 참 안타깝다. 한국에서는 스타트업에서나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누가 이런 기업있으면 꼭 좀 알려주면 좋겠다)
숫자가 판단을 가로막을 때:
단기적인 성과 강조, 정량적으로 측정될 수 없는 중요행위 및 성과 요소의 무시, 서류작업의 압박 등에 관한 부분이다. 사실 회사가 주식회사이고,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이 CEO라면 단기성과를 무시할 수가 없다는 점은 이해한다.
내부 경쟁이 친구를 적으로 만들 때:
· 대체로 리더들이 그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리더십 능력뿐만 아니라 경쟁능력도 뛰어난 덕분이다. 따라서 리더들 대부분이 업무환경에 경쟁을 도입하면 성과가 높아질거라고 믿는다.
‘나는 할 수 있는데 너는 왜 못 해?’ 같은 말들. 근데 사실 당신만큼 뛰어나면 왜 밑에서 일하겠는가. 따로 나가서 회사차리지. 역지사지의 정신이 중요한 거 같다. 그리고 내부경쟁의 가장 큰 단점이 바로 동료간의 협력심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제로섬 게임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나의 노하우를 동료와 공유하지 않게 된다. 이러면 소위 A급 플레어이들의 윈윈이 일어나기 매우 힘들다. (학교다닐때 1등하는 애가 10등, 20등 하는 애한테는 잘 가르쳐줘도 2등하는 애한테는 잘 안 가르쳐주는 것과 비슷하다.) 안타깝게도 초등학교 때부터 등수로 내부경쟁시키는 우리나라에서 이거 바꾸기가 매우 어려운 거 같다.(‘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까지 있을 정도이니 뭐 말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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