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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28’ - 가슴이 서늘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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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정유정의 소설을 이번에 읽은 28까지 세 권 읽었다.
‘7년의 밤’, ‘내 심장을 쏴라’, ‘28’ 순으로 읽었는데 28이 가장 가슴이 서늘한 소설이다. 가장 읽기 어려운 소설이라고 할까. 어려워서가 아니라 너무 현실같아서다. 실용서가 아닌 소설을 읽는 목적은 가지가지겠지만 그 중 가장 큰 건 대리만족이라고 본다. 그런데 28은 대리만족할 게 별로 없다.



독자의 환타지를 충족시켜주는 것도 없고 카타르시스를 느낄만한 부분도 없다. 보통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참담한 현실에서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되어가는지에 대한 전개를 읽고 있노라면 비록 소설이지만 무서워진다.
만약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실제로 이럴까봐 더욱 무섭다. 근데 그렇다고 딱히 다른 대안이 있을까라고 생각해봐도 떠오르는 게 없다. 도대체 정체도 알 수 없는 치명적 전염병이 퍼지고 있는데 국가에서는 해당 지역 봉쇄말고 방법이 있을까? 봉쇄 후 대책도 치료법도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외부의 감염되지 않는 의료진 및 통제인원(군인 및 경찰)을 내부로 무한 투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안에 갇힌 사람들에게는 정말 매몰차지만 차라리 감염자가 다 죽기를 기다리는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외부에 있을 때 얘기다. 만약 내가 내부에 갇힌 사람이라면 이렇게는 생각할 수 없는 일. 죽기살기로 봉쇄망을 뚫고 나가거나 운 좋게 살아남는다면 평생 국가를 원망하고 사람들을 증오하고 국적을 버리지 않을까 싶다.

또 하나 28에서 느낀 점은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잠깐 벗어나게 해준 것. 주연 중 한 명(마리)라 할 수 있는 링고의 관점에서 풀어가는 이야기도 독특하다. 인수공통전염병이 돌았을 때 개, 고양이 등 동물을 마구잡이로 살처분하는 게 과연 맞는 것인지… 이제까지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부분이다.
‘당연히 우선 다 죽여야지, 인간이 우선인데.’
‘아니, 어떤 종이 공통으로 전염병을 일으키는지 조사해서 해당 종만 최소한으로 살처분하도록 노력해야지.’
어렵다. 나는 솔직히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근데 실제로는 누군가는 신속하고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조류독감도 늑장대책하는 한국의 실제를 TV에서 보면서 제발 이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그나저나 소설 읽고 현실처럼 받아들여서 심각한 상상해보는 거, 나만 그런건가?)

2016/10/30 - [책] - '내 심장을 쏴라' - 정유정

2014/09/02 - [책] - 7년의 밤 - 정유정